마굿간 방문을 환영합니다.
마굿간배너
자유 게시판

이문세 "백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란 그렇게 불러야죠"

[Interview 이희정의 사람, 이야기] 데뷔 30년 맞아 대형 콘서트 여는 가수 이문세

  • 가수 이문세는 노래로, 공연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노래 한 곡에 눈물 흘리고, 그리운 사람 떠올려 보고, 위안을 얻고, 휴식을 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조영호기자 youcho@hk.co.kr
5만석 초대형 야외공연
소극장 선호했지만 노하우 축적
관객들과 제대로 밀당해 볼 것
변방의 가수가 큰 욕심 내봤다

작곡가 이영훈과 함께 한 20년
유행가란 단명의 운명 버텨낸 힘
좋은 곡 오버 안하고 내나름 표현
후배들 리메이크, 절제미 아쉬워

새 앨범 연내에
좋은 음악 담아야지 한 게 10년째
너무 망가진 음반시장의 현실 걱정
내 극장 만드는 것이 마지막 꿈


글 잘 쓰는 셰프 박찬일은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고 썼다. 추억의 절반이 아니라 팔할, 구할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단어가 있다면, 그건 노래가 아닐까 싶다. 가슴 저렸던 혹은 벅찼던, 안타까웠던 혹은 아름다웠던, 지난 시절의 한 토막을 문득 떠올릴 때, 흐릿한 기억보다 먼저 명치끝을 울리는 노래들이 있다. 1980,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에게는 이문세의 노래들이 그러할 터. 그의 노래들은 '그때 그 시절'의 추억에만 머물지 않고, 숱한 후배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려지며 세대를 넘어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히트곡 대부분을 작사, 작곡한 이영훈(2008년 작고)의 빼어난 솜씨가 '유행가'라는 말 속에 담긴 단명(短命)의 운명을 거스르는 힘의 원천이라면, 그는 데뷔 이래 648회의 크고 작은 공연을 열어 82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세대를 아우르는 깊고 넓은 물길을 내왔다.

올해 데뷔 30년을 맞은 이문세(54)가 6월 1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대.한.민.국. 이문세'란 간판을 걸고 콘서트를 연다. 2010년 1만석 규모의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연 세 차례 공연을 포함해 매진 행렬을 이어왔다지만, 최대 5만 명이 드는 초대형 야외 공연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지난 20일 서울 창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변방의 가수가 큰 욕심 한 번 내봤다"며 웃었다.

-'가왕' 조용필씨가 같은 날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을 한다니 더 긴장되겠어요.

당연히 긴장되죠. 그분은 중심에 서 있는 어르신이고, 저는 저 변방의 가수니까. 용필이 형님은 이미 주경기장에서 공연을 했으니 제가 한 수 배우는 입장이죠. 형님 공연이 더 잘 됐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형님이 우뚝 서 계셔야 후배들에게도 희망이 있으니까.

-"맨 뒷줄의 관객들이 흡족하지 않으면 죄 짓는 기분"이라고 말해왔는데, 뒷줄에선 가수 얼굴이 손톱 만하게 보일 초대형 야외 공연을 연다니 좀 의외입니다.

10년 전쯤 주경기장에서 마이클 잭슨 공연을 보면서 이런 데서 공연하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맨 앞줄이었는데도 무대에서 30m나 떨어져 아무런 감흥이 없었어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만족시키겠다는 승부사 같은 제 고집이 큰 극장에선 안 통한다고 본 거죠. 그런데 4년 전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5,000석 야외 공연을 하고는 잘 만들면 더 큰 그림도 그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소극장과 중극장, 1만 석짜리 체조경기장을 오가며 노하우를 쌓았어요. 4년의 세월을 뚝 잘라놓고 보면 큰 공연장은 싫다더니 이율배반적이네 싶겠지만, 그렇게 차근차근 밟아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맨 뒷줄 관객들까지 만족시킬 비장의 무기가 있나요?

공개하면 비장(秘藏)이 아니니 없는 걸로 하죠.(웃음) 우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익숙한 노래들로 채우려고요. 20대부터 60,7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할 테고, 이문세가 공연 잘 한다니 마치 1,000만이 든 영화는 봐줘야 할 것 같은 심정으로 오는 분들도 있겠죠. 그분들이 듣도 보도 못한 노래들을 하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가장 대중적인 노래들로, 다같이 따라 부르고 들썩들썩 춤도 추게 해야죠. 축제처럼 즐기면서,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지금껏 잘 살았는데 더 잘 살아야지, 이문세가 눈덩이를 조금씩 굴려 여기까지 온 것처럼 나도 삶에 대한 큰 그림을 한번 그려봐야지, 그런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공연 타이틀이 좀 거창해요.

제작진에서 의견을 냈는데, 저도 처음엔 야, 내가 김장훈이냐? 했어요.(웃음) 대한민국 김장훈은 그럴 듯하잖아요. 국가적인 일을 많이 하니까. 대한민국을 행복하게 만드는 남자, 대한민국을 유쾌하게 해주는 가수, 그것도 아니면 대한민국의 만만한 발라드 가수 이문세 정도면 좋지 않느냐고 해서 설득 당했어요. 대한민국 뭉쳐! 이건 아닙니다.

-제작발표회에서 "공연장에선 밀당(밀고 당기기)을 잘 해야 한다"고 했는데.

관객들 표정 보면 공연이 잘 풀릴지 힘들지 딱 알아요. 열기가 뜨거우면 그냥 밀기만 하면 돼요. 아닐 땐 제가 확 당겨줘야죠. 농담을 해서 막 웃기고. 지친 표정으로 앉아있는 관객 보면 제가 이러죠. 애니팡 하셨어요? 그럼 빵 터져요.(웃음) 공연의 성패는 관객을 얼만큼 저한테로 끌어들이느냐, 제가 얼만큼 관객들 마음 속으로 들어가느냐에 달렸죠. 끝날 무렵 모두가 열광하는 분위기가 되면 '오늘 밥값은 했네' 하고 내려오죠.

그는 2011~2012년에만 국내외 40개 도시를 돌며 100회 공연을 했다. 강행군을 하려면 자기관리에 철저할 수밖에 없다. "투어 시작하면 공연 뒤풀이 때 말고는 술을 안 마셔요. 공연 직전엔 아무리 높은 사람이 와도 절대 안 만나요. 그렇게 무대에 다 쏟아 붓고는 일요일 하루 쉬고 월요일부터 웨이트 트레이닝 하고 등산 하고 배드민턴 치면서 다시 몸을 만들어요. 후배들이 '형, 참 여우 같다' 그래요.(웃음)" 조영남도 언젠가 그를 일러 "징그러울 정도로 똑똑한 가수"라 평했다. 몇 해 전 서울에서 3주간 무려 12회의 공연을 잡았다가 지독한 후두염에 걸려 3회를 취소하는 초유의 일을 겪고는 더 철저해졌다. "관객이 무슨 죄예요? 티켓 끊고 설레며 기다렸을 텐데, 환불한다고 보상이 되겠어요?"

그는 밴드나 제작 스태프들에게도 "연애해도 좋다, 단 투어가 끝나기 전에는 절대 헤어지지 마라"고 한단다. 그 엄명 덕일까. 98년 '독창회'란 타이틀로 투어를 시작한 이래 공연팀 안에서 여덟 쌍의 부부가 탄생했다. "우리 팀이 굉장히 가족적이에요. 체육대회 열어 축구, 족구, 배구, 오재미도 하고, 낚시도 하고, 경치 좋은 곳 찾아 트레킹도 하고…. 공연팀이 행복해야 좋은 무대가 나오죠. 오로지 돈 때문에 일한다, 그것만큼 슬픈 것도 없거든요. 팀워크는 대한민국 최고라고 자랑할 만해요."

-공연 할 때마다 매진이었으니 돈도 꽤 벌었겠어요?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은 벌었지만, 주식으로 대박 났다거나 CF로 1년에 몇 억씩 버는 연예인들에 비할 정도가 아니죠. 수입이 공연밖에 없으니까. 최상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 제작비를 넉넉히 쓰다 보니 늘 아슬아슬하게 남겨요. 매진 안 되면 손해 나는 거죠. 큰 돈 못 벌어도 관객도, 저도 손해보지 않는 그 정도가 제게는 가장 달콤한 수입이에요.

-시대의 가객, 만능 엔터테이너 등 여러 수식어 중 뭐가 가장 마음이 드나요?

가객은 무슨…. 별밤지기(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진행자) 할 때 청취자들이 붙여준 '영원한 우리들의 오빠'가 제일 편하고 좋아요. 요즘도 저더러 아저씨라고 불렀다간 열성 추종자들한테 야단 맞습니다.(웃음)

-몇 년 뒤면 환갑이신데.

칠순 앞둔 용필이 형님도 오빠잖아요. 아저씨 하면 퇴물 취급 당하는 것 같아요. 나이를 떠나 오빠 하면 아직은 섹시함이 묻어있는 것 같은, 여전히 남자로 봐주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죠. 얼마 못 갈 간당간당한 기대감일지라도.(웃음)

그는 한때 가수보다 DJ로 더 유명했다. 78년 개그맨 전유성의 소개로 CBS 라디오 '세븐틴'의 DJ를 맡아 연예계에 발을 들였고, KBS '달려라 중계차' 리포터, MBC '영11' 진행자로도 활약했다. 83년 데뷔 앨범 '나는 행복한 사람', 이듬해 2집을 냈지만, 그저 '노래 잘하는 MC'로 비쳤다. 그러다 운명처럼 작곡가 이영훈을 만났다. 85년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로 대박이 터졌다. "버스만 타면 이 노래가 나오고, 승객들이 흥얼흥얼 따라 불렸죠. 어깨 툭툭 치며 '제 노래예요' 하고 싶은 걸 꾹 참았죠.(웃음)"

4집 '사랑이 지나가면', 5집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 잇따라 빅히트 하며 이문세-이영훈은 '발라드의 새 장을 연 황금콤비'로 자리매김했다. 대학 공부는 뒷전이고 라이브 카페를 드나들다 '딴따라'가 돼버린 외아들을 "망상을 쫓는다"며 타박하던 부친도 86년 그의 첫 공연에 관객들이 꽉 들어찬 걸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뒤로는 부친께서 인정을 해주셨나요?

예. 그렇다고 "야 너 대단하다" 그러신 건 아니고, 어머니한테 "저 녀석 요즘 TV에 나와?", 제게 "돈벌이는 좀 되냐?" 묻는 정도였죠. 4집 나왔을 때 사인해서 드렸더니 다음날 그러세요. "전축으로 들었다. 좋더라." 어떤 곡이 좋았냐고 여쭸죠. "마지막에 나오는 '어허야 둥기둥기'가 제일 낫더라." 그게 건전가요잖아요. 지금 하늘나라에서 보고 계신다면, "뭐 5만? 네가 간이 부어도 너무 부었구나" 하실 거예요.(웃음)

-가창력이 그렇게 뛰어난 가수는 아닌데, 30년을 꾸준히 사랑 받은 비결이 뭘까요?

무슨 말씀이세요, 저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예요. 그럼 비주얼이에요?(웃음) 저는 이영훈씨가 남겨준 음악들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조조할인' '솔로예찬' 등 다른 곡들도 많지만,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와 노랫말은 영훈씨 곡들이에요. 그 좋은 곡들을 오버하지 않고 제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해 온 것이 제가 버텨온 힘이죠. 무조건 지른다고 가창력 좋은 게 아니잖아요. 노래는 질리지 않아야 돼요. 특히 음반은 라이브와 달리 백 번 들어도 계속 듣고 싶게 불러야 해요. 3집에 실린 '소녀'를 들어보면 얼마나 어설픈지 몰라요. 그래도 그게 좋거든요. 호소력이란 게 운다고 나와요? 아니죠. 절제하고 아닌 척 할 때 더 슬플 수 있어요. 후배들이 리메이크 할 때 그런 절제가 없는 게 좀 아쉬워요. 아무리 음정 정확하고 감정 넣어 우우우~ 예에에~ 불러도 매력이 없는 거죠.

-리메이크 곡들이 대체로 다 그런가요?

끔찍할 정도로 잘 부른 곡들도 있어요. 최근에 로이 킴이 부른 '휘파람'은 멜로디 익히느라 급급해 아무 생각 없이 부른 게 티가 나요. 그런데 그게 더 슬퍼요. 분석을 다 해서 불렀다면 그렇게 안 나왔겠죠. 빅뱅은 '붉은 노을'을 완전히 해체해 재해석했는데, 오리지널리티를 너무 파괴하고 가지고 논 것 같았으면 화냈을 거에요. 원곡의 모티프를 살리면서 빅뱅 스타일을 잘 첨가했죠. 듣는 순간 히트하겠다 싶었어요.

-자신의 노래 가운데 '베스트 5'를 꼽는다면.

순위를 매길 순 없고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서정적인 노래라고 생각해요. 제 노래지만 되게 자부심을 갖는 곡이에요. '붉은 노을'은 심장을 뜨겁게 해줘서 좋고, '광화문연가'는 모든 사람들의 세월을 아우르는 음악이라서 좋아요. 저를 가수로 만들어준 대표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 그리고 영훈씨 작품은 아니지만 이 노래와 대구를 이루는 듯한 최근 곡 '알 수 없는 인생' 그 정도예요.

-이영훈씨 하고는 20년을 함께했는데 서로 존댓말을 썼다죠.

영훈씨가 한 살 어린데, 저보다 훨씬 진중한 사람이에요. 생각의 깊이나 앞을 내다보는 거나. 그러다 보니 '야 말 놓자', 이게 안 됐어요. 보통은 친해지면 말부터 놓는데, 그러다 보면 함부로 하게 되고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벌어져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존중하는 관계, 지금 생각해도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최근 이영훈씨 5주기 추모 글에서 "스타일이 너무 달라 부부였으면 못 살았겠지만 음악적으로는 충돌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7집 이후 결별이 충돌의 결과 아니었나요?

충돌은 없었어요. 자구책이었죠. 더 이상 함께 작업해 보여줄 게 없었으니까. 대중이 우리를 멀리 해도 의리로 끝까지 간다, 이러면 망한다는 걸 서로가 잘 알았어요. 그래서 쉬기로 했죠. 그러다 9집에서 다시 만나 13집까지 냈어요. 그런데 대중들 듣기에는 예전 음악만 못했던 거죠. 그러니 힘이 빠지고, 그 무렵부터 음악 시장도 점점 쇠락하기 시작했고.

-2002년 14집 이후 정규 앨범을 내지 않았는데, 안 냈나요, 못 냈나요?

둘 다. 좋은 음악이 없어서 못 냈고, 어렵고 혼탁한 음반 시장에 굳이 손 들고 들어가야 하나 싶어 안 냈고. 현직 가수가 휴업은 몰라도 폐업은 안되지, 좋은 음악 만들어서 내야지 한 게 벌써 10년이네요. 지금 한창 작업 중이에요. 올해 안에는 내야죠. 근데 음반 시장이 너무 망가졌어요. 작년 한해만 제 공연에 15만 명이 왔는데, 음반은 안 사요. 5억을 투자했으면 적어도 5억은 벌어야 계속 낼 텐데, 수익 구조가 따라주지 않으니 못 내는 가수들이 꽤 돼요. 음반 시장을 흔들어놓은 불법 다운로드서부터 제작자들이 돈 안 들이고 찍어내기 식으로 양산한 것 등 여러 원인이 실타래처럼 얽혀 풀기가 쉽지 않죠.

-어릴 적부터 누나들 따라 고고장도 드나들 정도로 끼가 넘쳤다는데, 집안 내력인가요?

아니요. 제가 외아들이라 재롱을 떨면 온 가족이 행복해 했죠. 그러나 보니 네댓 살 때부터 집안 분위기가 좀 이상하면 개다리 춤이라도 춰서 반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네에서도 인기가 많았어요. 어르신들이 산소 앞에 모여 있다 제가 나타나면 '아이고~ 우리 문세 왔네' 했어요. 그때 스타 의식이 싹튼 거죠.(웃음)

-'무릎팍 도사'에서 TV 프로그램 하고 싶다고 했는데, TV에선 재미를 못 보셨나요?

아니요. 가수로서 나가는 건 제가 꺼렸지만, 예능 프로그램 다 잘 됐죠.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이홍렬 이휘재랑 짝을 이뤄 시청률이 65%까지 올랐잖아요. KBS '이문세쇼'도 1년간 라이브로 진행하다 보니 원형탈모증까지 생기고 너무 힘들어 제가 그만뒀죠. 단명한 건 MBC 토크쇼 하나예요. 무릎팍 도사에선 뭐라도 고민을 말해야 한다기에 MBC에서 좋은 음악 프로그램 하고 싶다 했는데, 엉뚱하게 '그렇게 TV 하고 싶어? 그렇게 안 써준단 말야?' 하는 반응이 나온 거죠. 심지어 KBS, SBS에서 전화해서 우리하고 재미있는 버라이어티 쇼 하자고 하고.(웃음) 저는 제대로 된 음악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요.

-2004년 총선 때 러브콜을 받기도 했는데, 고민은 좀 했나요?

때만 되면 제의가 와요. 그럴 뜻도 없지만 집사람이 '절대 하지 말아라, 정말로 내가 싫으면 하라'고 엄포를 놔서, 싫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웃음) 연예인들 중에 정치 해서 성공한 예가 있어요? 힘들어, 그 판은 아닌 것 같아, 다 그러잖아요. 남들이 박수 쳐주는 것도 아니고, 떼돈 버는 것도 아니고, 그걸 왜 하죠?

-가수로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제 극장 만드는 거요. 이문세 씨어터. 그게 창피하면 LMS 씨어터. 이거 잘 하면 명품 극장 되잖아요, 에르메스 씨어터.(웃음) 요즘 공연장 때문에 다들 난리인데 전용극장 만들어 좋은 공연 유치하고 저도 하고 후배들도 같이 하고. 저의 마지막 꿈이에요.

http://www.youtube.com/watch?v=Fp58L6BNcck&feature=player_embedded<
  • ?
    귀여운도깨비 2013.03.23 00:25
    잘읽었어요.^^
    요즘~~~
    대.한.민.국 이문세 오빠...공연 얘기로
    대한민국이 술렁이고 있어요.^*^
    6얼1일도~~~엄청 기대 되고 기다려 집니다.^^
  • profile
    샤방곰탱이 2013.03.23 14:23
    공연이야기로 술렁이고...
    방송가에도 여기저기 오빠 나오느라 술렁이고....
    저는 방송다시보기로 바쁘고 ㅋㅋ
    요즘 행복한 나날들입니다..
  • ?
    한우리 2013.03.25 10:22
    환갑...아..안 어울려 ㅋㅋ
  • ?
    monica 2013.03.26 21:03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분! 제가 알고있는 그 분입니다 짝짝짝~~~^^
  • ?
    올리브 2013.03.29 17:33
    음...어떻게해야 3차마감안에 들수있을지~~~~

자유 게시판new

단일배너

행사앨범